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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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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건국설화가 서려있는 신성한 곳 삼성혈 (三姓穴) 삼성혈은 제주 성씨의 본향이다. 제주도의 건국설화가 서려있는 신성한 곳이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동(二徒洞)에 있는 신화유적이다고 볼 수 있다. 지정번호 사적 제134호 , 지정연도 1964년 6월 10일, 소재지 제주 제주시 이도동 1313 외, 면적 2만 9647㎡, 분류 사묘, 제단 1964년 6월 10일 사적 제134호로 지정되었다. 제주도의 고(高)·양(梁)·부(夫)씨의 3 시조 격인 고을나(高乙那)·양을나(良乙那·梁乙那)·부을나(夫乙那) 세 신인(神人)이 각각 솟아났다는 신화가 전하는 유적으로 모흥혈(毛興穴)이라고도 한다. 제주시 한가운데에 있는 제주 칼호텔과 제주도 민속자연사박물관 사이 송림이 우거진 숲 한가운데에 세 개의 구멍이 각각 수 m의 간격을 두고 품자(品字) 형을 이루고 있는..
역사와 혼이 담겨진 『제주 용담동 유적』 제주 용담동 유적은 남해안을 마주 보는 제주도 북부 한가운데에, 해안에서부터 약 500m가량 떨어진 완만한 평지 상에 있다. 이 일대는 속칭 먹돌생이라 하는 곳으로, 완만하게 펼쳐진 대지가 반경 2km 이상 이어져 있는 곳이다. 용담동 유적은 1984년에 용담동 주택공사 현장에서 합 구식(合口式) 독무덤 1기가 발견됨으로써 발굴이 시작된 유적이다. 묘역은 그 한가운데 동서방향으로 길게 이어진 석렬(石列)을 경계로 하여 남북 두 구역으로 나뉘었다. 남쪽 구역에서는 고인돌 하부구조처럼 보이는 석곽묘(石槨墓) 3기, 북쪽 구역에서는 6기의 옹관(甕棺)과 1기의 다소 폭이 좁은 장방형 석곽묘가 확인되었다. 한 곳에 위치한 유적이지만, 남북 두 구역으로 나뉜 용담동 유적은 그 형성 시기가 서로 같지 않다. 남쪽 ..
항파두리 『遺物槪觀』오현단(五賢壇) 항파두리 『遺物槪觀』 삼별초 세력은 원종 12년(1271) 5월 진도에서 항거하다가 몽고와 고려 연합군에 의해 밀려났다. 그 결과 세력의 일부가 제주로 거점을 옮기게 되었고, 여기에서 이후 3년 동안 고려 최후의 반몽 세력으로 활동을 계속하였다. 이들의 제주 입거에 대해, 《고려사》에서는 「적장 김통정이 남은 무리를 이끌고 탐라로 들어갔다」고 하고 있다. 그리고 남해도에 근거하고 있던 유존혁(劉存奕)은 삼별초 세력의 제주 입거 소식을 듣고 선단 80여척을 끌고 합류했다고 전해진다. 이로써 본다면 제주도 삼별초 세력은 진도로부터 탈출한 세력이 중심을 이루면서 아울러 여타 남해 연안 도서로부터 이동한 세력, 그리고 이전 제주도에 있던 삼별초 세력 등이 합류하여 항전 활동을 재정비하게 된 것이라 할 수 있을 ..
탐라국의 성립, 관덕정과 제주목 관아에 대하여 ① 탐라국의 성립 전설에 의하면 고을나·양을나·부을나 3명의 신인이 모흥혈에서 용출하여 나라를 세우고 살았다고 한다. 중국의 역사책인 “후한서”와 “신당서”에 의하면 사람은 키가 작고 언어는 한(韓)과 같지 않다고 하였다. 신라의 삼국통일 이전의 사회는 3 성씨족의 공동 연맹 체제를 보인다. ② 백제에 복속 탐라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백제와 476년(문주왕 2) 4월에 사신을 파견하여 방물을 바쳤으며 백제왕은 사신에게 좌평이란 높은 관등을 수여하였다. 498년(동성왕 20) 8월에는 탐라가 공부를 이행하지 않으므로 동성왕이 직접 탐라 정벌에 나섰다. 이 소식을 들은 탐라왕은 사신을 파견하여 사죄하며 공부할 것을 약속하였다. ※ 고구려와는 정식으로 국교는 없었으나 백제에 복속될 때까지 가옥(珂玉)을 수출하는..
제주도 폭포의 전설 천지연 폭포 길이 22 m, 너비 12 m(물이 많을 때), 못의 깊이 20 m. 조면질(粗面質) 안산암으로 이루어진 기암절벽에서 세찬 옥수가 떨어지는 경승지이다. 폭포 일대는 뛰어난 계곡미로도 제주에서 손꼽히는 곳인데, 이 계곡에는 아열대성 ․난대성의 각종 상록수와 양치식물 등이 밀생 하는 울창한 숲을 이룬다. 특히 이곳에 자생하는 아열대성 상록수인 담팔수(膽八樹) 몇 그루는, 이곳이 담팔수의 북한계지에 해당된다는 점에서 희귀시되어 천연기념물 제163호로 지정되어 있고, 그 밖에도 가시딸기 ․송엽란(松葉蘭) 같은 희귀 식물들이 분포하고 있어 계곡 전체가 천연기념물 제379호로 보호되고 있다. 식물뿐만 아니라, 폭포 아래 물속 깊은 곳에는 열대어의 일종인 무태장어가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열..
서양화가 이중섭에 대하여 이중섭의 작품들을 보기 전, 나는 이중섭에 대한 조금의 지식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이중섭의 일대기를 단편으로 읽은 적이 있었던 저는, 미술에 관심이 전혀 없었지만 이중섭에 대한 배경 지식은 존재했습니다. 그것은 제가 미술에 관한 알고 있는 지식 중 유일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는 원산에서 태어났고, 그 시대의 뜻있는 청년들이 모여있던 정주 오산학교를 나와 자신의 꿈을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간 것입니다. 그곳에서 일본 여자와 사랑에 빠졌고, 그 둘은 결혼했으며, 다시 한국에 돌아와 가난한 생애를 보내다 가족들과 이별하고 젊은 나이에 외로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 이것이 내가 알고 있는 이중섭의 삶이었다. 이중섭은 그 시대 이전에 보지 못했던 단순화된 형식과 선명한 원색적 색채. 그리고 과감한 필촉으로 사..
제주도 문화유산 답사기 협재굴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에 위치한 협재굴은 용암굴이 유사 석회암 동굴로 변하고 있는 지질학상 매우 특이한 동굴로서 천연기념물 제236호로 지정된 곳이다. 협재굴의 특징은 그 일대가 모래와 조개껍질이 섞인 패사층 이어서 동굴 천장에 스며든 물방울이 떨어지면서 신기한 모양의 용암 석회 종유굴을 만든다는 것이다. 협재굴 안은 비교적 드넓은 공간이 있고 양간의 용암 석순이 자라고 있다. 남국의 야자수 정취가 넘치는 한림공원 내의 협재굴은 뜨거운 용암이 낮은 저지대로 흘러내리면서 만들어진 용암폭포와 물굽이가 특히 아름다운 동굴이다. 페루의 󰡐석염동굴󰡑, 유고의 󰡐해중 종유굴과 함께 세계 3대 불가사의 동굴로 꼽힌다. 용암동굴이지만 석회동굴처럼 10년에 1m식 자란다는 황금빛 종유석과 석순이 계속 자라고 있기 ..
세상을 밝히는 은혜의 빛, 제주 거상 김만덕 서론 오랫동안 우리 사회가 남성 중심적인 가부장적 문화에 젖어 있으면서 역사 속의 인물에 대한 평가는 주로 남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따라서 역사 속의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고 그들의 업적은 무시되었다. 최근에 현대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높아지고 역할이 다양해지면서 역사 속에서 다양한 역할을 통해서 업적을 남기거나 사회에 공헌을 한 여성들을 찾는 작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역사 속의 여성이 존재감이 남성보다 현저히 부족하다는 인식이 있다. 이러한 필요성에 입각해 나는 여성인물인 김만덕의 삶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다양한 삶의 모습을 살펴보고자 한다. 김만덕이 살았던 조선시대를 본다면 대부분의 조선시대 여성들은 출산과 자녀양육을 비롯하여 가족 노동력의 재생산을 위한 가사노동을..